사생활/가족, 친구

개와 나(I)

nicole10 2025. 3. 14. 23:57

나는 동물 공포증이 있었다. 특히 개.

내가 어렸을 적에는 개를 풀어놓고 키우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길에서 개라도 마주치면 도망치느라 남의 차 위에도 올라가보고, 차도에 뛰어든 적도 있다. 개 피하다 죽을 뻔 하기도 했다는 소리...

뭐가 그렇게 무서웠었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개들이 나한테 꼬리치며 달려오는게 정말 너~무 무서웠었다. 뭔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강력한 두려움이었을까. 마치 저기 있는 의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것 마냥, 움직이면 안되는 것이 움직이는 것 같은 생경한 감정이 매번 나의 버튼을 누르곤 했다.

 

지원이와 처음 친해지게 되었을 때, 달리기 말고 같이 식사도 함께 하자고 만났을 때 지원이는 당시 자신의 안내견인 달래를 데리고 왔다. 달래는 안내견 치고도 되게 작았던 아이였음에도 나에겐 소만큼 크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달래는 지원이를 안내하느라 나한테는 관심도 없었지만.

 

한 번은 지원이랑 같이 관악산에 놀러가기로 하고 우리집에서 달래와 함께 하룻밤을 잔 적이 있다. 지원이가 샤워하는 동안 달래 쉬를 뉘이러 나갔어야 했는데, 달래가 무서워서 내가 계속 목줄을 매지 못해가지고 쩔쩔매니 엄마가 대신 목줄을 매어 주기도 했었다. 당시 우리집은 사람만 사는 곳 이었기에 집에 들어와 하네스 및 목줄이 풀린 달래가 신이 난다며 몸을 털고 폴짝 폴짝 뛰는 모습에 온가족이 당황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엄마 아들이 어떤 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매리. 회사에서 키우는 개가 어쩌다 임신을 하게 되어 4마리를 낳았는데 그중 가장 작고 약하게 태어난 아이라고 했다. 동생이 회사에 입사했더니 태어난 지 3개월 된 애들이 회사에서 꼬물거리면서 기어다녔고, 그 중 한 애가 유난히 치댄다고 했었나... 당시 조감독으로 잠도 못자고 혼나가면서 일하던 내 동생은 이 아이를 통해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매리. 가족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 번 인가 두번.

애기적 매리, 애기땐 저렇게 이마에 넓게 흰털이 있었다. 대머리처럼.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이 집에 그 매리를 데리고 왔다. 애가 눈이 아프단다. 보니까 한쪽 눈의 털이 다 빠져있다. 아마 위생적으로 좋지 않은 환경(사무실)에서 생활했기 때문이겠지... 엄마랑 아빠는 아니 얘를 그냥 이렇게 대책없이 데리고 오면 어떻하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았다. 하지만 동생의 상태를 보고는 별 말 하지 않으셨다. 이미 피로에 찌들어서 얼굴이 걸레짝이 된 애한테 뭐라고 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동생은 아무래도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든데, 얘가 눈에 밟혀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 더 괴로운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짐을 대신 져 주기로 했다. 매리를 잘 맡아주면 이 아이가 조금 덜 힘들겠거니 하면서. 그렇게 매리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매리를 우리집에 데려다 놓고, 동생은 3일을 집에 오지 못했다. 그렇게 바빴다 걔가.

 

어느 날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버린 탓 이었을까, 매리는 이틀 동안 동생방에서 꼼짝도 안하고 엎드려있다가 밤이 되면 몰래 화장실에 가서 배변을 하고 다시 동생방으로, 그 방에서도 침대 밑으로 들어가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3일째부터는 조금씩 나와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근데 집 밖에 소음에 너무 예민해서 밖에서 뭐만 부시럭하면 짖기 일쑤였다. 당시 우리는 오래된 연립 주택에 살았었는데, 매리 덕에 그 집이 방음이 안좋은 집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애가 쉬도 누고 똥도 눠야하니까 집 안에 배변 패드를 깔아놨었는데, 매리는 절대 배변 패드 위에다 배변을 하지 않았다. 배변 패드 바로 옆에 소변을 보거나 안 보이는 곳에 소변을 보고, 대변을 보았다. 어느 날 부터는 소변은 있는데 대변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해서 찾아보니 얘가 대변을 먹는 것 같았다. 똥 먹는 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유투브를 찾아보고 강형욱 선생님의 강의를 하루종일 들으면서 매리가 실외 배변을 해야 하는 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리가 우리집에 왔을 무렵인 2020년 2월엔 전 세계적인 판데믹으로 세상이 마비가 되었던 때였다. 당시 나는 매 겨울마다 찾아오는 지독한 우울 삽화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1~2시간에 한번씩 깨서 다시 잠들기까지 30~40분 동안 눈 뜬채로 누워있기 다반사였는데, 이왕 잠 못 자는거 깰 때마다 얘가 화장실에 대변을 봤는지, 그걸 먹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다시 잠들었다. 그러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다. 어짜피 밖에서 누고 싶어하는 애면 자주자주 나가면 되니까. 내가 새벽에 깼을 때 얘도 깨있으면 그게 몇 번이고 데리고 나갔다. 그러다 얘가 새벽에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변이 마려우면 실내 아무데나 하지 않고 참다가 산책을 나가면 배변을 하는 그런 패턴을 보였다. 생각해보니 강형욱 선생님께서는 개들은 몸안에 시계가 있다고 말씀을 하셨었던 것 같아서 산책 시간을 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 4번.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자기 직전에 한번 더. 산책을 자주 나가니 문제 행동도 많이 사라졌다. 집 안에 있으면 주로 먹고 잤다. 짖음이나 공격성 등도 많이 경감되었다.

예전에 살던 연립 주택에서 매리와 친해진 뒤 공놀이

 

배변 훈련부터 복종 훈련, 분리불안 개선 훈련 등 처음 함께 맞춰가는 시간을 지나고 나니 봄이 왔다. 흩날리는 벚꽃 아래서 매리랑 산책을 하던 나는 문득 매 해 겪던 우울 에피소드가 매리 뒤치다꺼리 하느라 정신없이 지나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대 초반 나의 삶에 상실이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상처와 슬픔으로 나는 꽤 오랜시간 동안 괴로워했다. 특히 특정 시기가 되면 나의 자아는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어둠 속으로 무섭게 빨려들어가기 일쑤였다. 이 시기를 피해보려 이런 저런 노력도 해보았지만 갈수록 나를 짓누르는 무게가 더 무거워질 뿐 이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삶을 비극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눈 뜨는 것이 괴로웠고, 빨리 세상이 끝나기를 바랬다. 적어도 내 세상만이라도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사실 판데믹이 시작됬다고 했을 때 잠깐 상태가 좋아지기도 했었다. 이제 정말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으니까. 이 괴로운 세상,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되니까. 천국엔 괴로움이 없다고 하셨으니... 심상치 않은 뉴스를 보면서 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마지막을 기다렸다.

 

그런데 세상이 생각과는 다르게 끝나지 않고 계속 굴러갔다. 나는 당시 IT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잘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우리팀은 정말 너무너무 바빠져서 일도 쉬지않고 해야했다. 출근 전 새벽에 컴컴한 양재천을 달리면서 이렇게 살아서 뛰고 있는 내가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워 눈물을 훔치기 일쑤였다. 사는게 넘 힘들고 죽지도 못하고 오도가도 못하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그 무렵에 매리가 우리집에 온 거였다. 울면서 새벽을 달릴 때, 하루에 4시간 자면 많이 자는 거였던 그 때, 갑자기 매리라는 동물이 나타나 날 정신없게 만들더니 그 모든 슬픔과 어둠을 무력화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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