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워드 제작
접이식 장바구니의 사이즈는 바로 제작이 가능한 업체의 샘플 사이즈 중 하나로 골랐다. 내가 커스텀으로 주문 제작할 수도 있었지만, 그 경우 철형 제작 등으로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빠른 길을 택하기로 했다. 러너들이 신발을 넣고 다닐 가방을 만든다는 가정하에 내 주위 러너 중 발이 가장 큰 사람(290mm)의 신발이 들어갈 수 있는 정도를 기준으로 사이즈를 골라 주문을 넣었다.
주문을 마치니 메일로 계산서와 함께 리워드 제작을 위한 디자인 템플릿을 보내주셨다. 나는 웹 상에서 디자인만 해봤지, 현물 디자인(?)은 처음이었기에 이 디자인이 어떤 방식으로 가방에 얹히게 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일단 담대한 마음으로 디자인에 돌입했다.
그 때 마침 우리 로고를 만든지 얼마 안됬던 관계로, 로고플레이로 패턴화 하고 컬러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컬러는 무난히 가지고 다닐 수 있을만한 검정으로 하나를 정하고, 내가 좋아하는 레드 오렌지를 또 하나로 정했다. 문득 이 디자인이 사람들 맘에 안들면 어쩌나 잠시 겁이 났지만 지난 시간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얻은 '답이 뭔지 모르겠을 땐 내 눈에 예쁜게 정답'이라는 인사이트를 기억하며 내 취향껏 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서 하루 동안 디자인을 마치고, 업체에 바로 디자인을 전달했다. 결제 후 15~20일 이내에 제작이 완료된다고 적혀있었는데 정말 15일 뒤에 집에 제품이 도착했다. 어떻게 디자인이 되었을지 너무 궁금해서 열어본 순간... 갑자기 정수리가 뜨거워졌다. 예상과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패턴화 된 로고가 새겨진 가방을 펼치면 그래도 괜찮았는데, 접힌 가방이 들어가는 주머니의 로고가 생각보다 너무 커보였다. 컬러도 좀 더 쨍했으면 좋겠고... CMYK의 한계인가... 자꾸 아쉬움이 스멀스멀 올라와 식은땀으로 흘렀다.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거실로 나가 엄마한테 리워드를 들이밀며 물어보았다.
| 나 엄마 이거 어떻하지..? 생각보다 다르게 나온거 같아요...
| 엄마 이거? 아니 뭐 괜찮아! 리워드 치고는...
리워드 치고는?... 엄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심장이 벌렁벌렁하는데 엄마가 덧붙였다.
| 엄마 리워드 맘에 안들어서 후원 안하는 사람은 없을꺼다. 너무 걱정하지 마.
정말 그렇겠됴? ㅠㅠ 지금 갈길이 더 남았는데 이런 일에 심장이 자꾸 내려앉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5월 말, 이제 제품 촬영을 하고 와디즈에 포스팅을 올릴 차례였다.
펀딩 컨텐츠 제작하기
사실 난 미대를 나오고, 디자인 일도 오랫동안 해왔지만 사진을 정말 못찍는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광고업계에서 일하시는 남동생님이 계시기에 그에게 제품 촬영을 부탁했다. 동생이 출근하기 전 매리 산책을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찍어준 제품사진을 일하다가 받아보았다. 생각보다 뭔가 후져 보였다...(날씨 탓이었을까? ㅠㅠ) 물론 제품이 내 생각과 다르게 나오긴했어도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29cm에 들어가 비슷한 상품이 어떻게 촬영되고 게시되는지 살펴보았다.
그 곳에 게시된 상품을 보면서 나는 이 리워드를 어떻게 매치할 수 있고, 쓰일 수 있는지에 대한 예시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델을 쓰고 스튜디오를 빌리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어서, 내가 그냥 주말 낮에 집에 있는 옷 중 가장 무난하고 단정해보이는 티셔츠를 입고 가방을 매고 남동생을 다시 붙잡아 우리집 아파트 정원에서 두번째 촬영을 했다.
두번째 촬영을 마치고, 와디즈 스토리를 쓰기 시작했다. 단체 자격으로 펀딩을 올리고 싶었는데, 우리는 임의단체이고 사업자가 아니다보니 와디즈 정책상 단체로서 인정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장지은 개인 입장에서 펀딩을 모금하여 가이드런프로젝트에 full 기부하는 것으로 자격을 정리했다.
막상 글을 쓰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우리를 소개하고 글을 써야할 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왠지 요즘엔 긴 글보다는 숏폼이나 카드 뉴스 등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추세이니 간결하게 내용만 잘 전달하면 될 것 같았다. 당시엔 인스타그램 컨텐츠는 얼추 준비가 된 상태여서, 인스타그램 기획을 참고해서 불필요해보이는 글은 최소화하고 사진을 많이 배치하여 짧은 광고처럼 1차 드래프트를 완성하였다. 나름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와디즈에 심사를 신청했다.
약 3일 정도가 지나 퇴근 시간에 가까워서 피드백이 왔다. 지금은 히스토리가 다 사라져서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결과적으로 컨텐츠가 좀 더 보강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나의 개미 심장이 또 쿵 내려앉았다. 지금 바로 승인이 어서 되어서 오픈해도 빠듯한 스케줄인데, 이런 빠꾸(?)는 계획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생각해보았다. 와디즈의 심사 피드백은 결국 나의 포스팅이 펀더들에게 어필이 안될 것 같다는 말이었다. 나는 짧은 글과 간결한 내용이 바쁜 현대 사회에 더 적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와디즈에서 특히 후원 컨텐츠를 눌러보는 사람들은 이 펀딩을 진행하는 이유를 더 자세히 알고싶어 할 것 같았다.
수정 방향을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그냥 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내가 왜 이 펀딩을 준비했는지, 나에게 이 활동이 왜 중요한지를 쓰는게 가장 쉽고 빠른 길 같아보였다. 사실 그 동안 이 활동에 대한 내 생각을 조각조각 말로 흘린적은 있어도 이렇게 하나의 완성된 스토리로 써보는 것은 처음이었던지라 왠지모를 부담과 두려움이 조금 있기도 했다. 약간 나의 맨살을 드러내는 기분이었달까.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고, 또 이때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글 써보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PT 수업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밤 11시가 다 되가는 시간부터 나는 씻지도 않고 모니터 앞에 앉아 한 호흡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글을 다 쓰고 나니 새벽 2시쯤이 되었다. 남동생은 보통 그때까지 안자고 깨어있기 때문에 그를 불러 한번 읽어보라고 모니터 앞에 앉혔다. (너가 이해하면 다 이해할 수 있을꺼야..라며..) 동생은 글이 정말 길다고 했지만 잘 읽힌다고 말해줬다. 드디어 마음이 좀 놓였다. 다음 날 아침 한번 더 검토를 한 뒤 재심사를 요청했다. 이후 몇 번의 마이너한 수정 요청(금액 표기 방식 등)이 오갔고, 재심사 요청 후 약 일주일 뒤 최종 승인이 완료되었다! 드디어 펀딩 오픈일이 정해진 것이다...!
펀딩 결과
최종 승인 메일을 받자마자 우리 가이드런프로젝트 단톡방에 올릴 글을 진지하게 쓰기 시작했다. 사실 스토리 쓰는 것보다 이게 더 조심스러웠다. 공지글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친 뒤 긴 공지에 대한 양해를 먼저 구하고 단톡에 차례로 공지를 올렸다.
단톡에 계신 분들은 나의 이 소식(공지)을 매우 반갑게 받아주셨다. 나는 그 반가움을 '커뮤니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 대한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매우 긴 공지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우리가 다같이 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프로그램 운영에 힘을 보태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개인의 영향력이 개인을 넘어선 실재에 미치는 경험은 매우 감동적이기 때문에, 그 감동이 쌓이면 우리 커뮤니티가 더 견고해질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오픈예정을 각자의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공유하면서 주변에 우리의 시작을 알렸다. 일주일 후 펀딩이 오픈되자마자 우리는 후원을 하고, 한 마음으로 100%가 되기를 응원했다. 물론 오픈하자마자 갑자기 와디즈 홈페이지가 긴급 점검을 하고, 알고보니 너무 구렸던 접근성 환경 때문에 많은 시각장애러너들이 후원을 시도했다 실패하는 삑사리도 있었지만, 우리는 하루도 되지 않아 100%를 채울 수 있었다.
운동이 10시에 끝났던지라 나는 펀딩이 100% 넘었다는 것을 운동이 끝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뭐랄까... 얼떨떨하다고 해야하나? 정말 기쁜데 꿈인지 생시인지!! 정말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날 오전에 펀딩이 오픈된 후 우리는 틈날 때마다 다같이 펀딩이 얼만큼 채워지는지 확인하고 숫자가 하나씩 올라갈때마다 다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했었는데, 펀딩이 성공한 것도 기쁘지만 나는 우리가 단톡에서 다같이 한마음으로 성공을 응원했던 그 순간이 말그대로 "꿈" 같았다.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진짜진짜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 2024 가이드런프로젝트 하계 16주 훈련을 위한 와디즈 펀딩 보러가기
펀딩은 137%로 마무리 되었다. 너무 불편한 접근성과 비장애인 가이드 몇명에게도 쉽지 않았던 와디즈 시스템을 고려해보았을 때 나름 선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당시 접근성 때문에 펀딩에 실패한 여러 시각장애러너분들께서 그냥 계좌를 오픈해 달라는 요청도 하셨었는데,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이미 우리가 필요했던 금액은 다 채워진(넘친) 상황에서 욕심을 부리고 싶진 않았다. 나중에 수수료 떼고 하면서 아주 타잇!하고 아슬아슬! 하게 모금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지만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 나는 아직도 후원금 모금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움직이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는 커뮤니티 주도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운영비 마련에 성공했다. 가이드런프로젝트의 첫 공식 프로그램이 기쁘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출항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보아도 참 감동적이고 의미가 큰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 소중한 펀드를 하계 16주 동안 야무지게 사용했다. 2024년 하계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도 Coming soon.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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